항만은 공기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 주위에 늘 있지만 눈에 잘 보이지는 않고 없으면 일상적인 삶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이용하고 익숙한 도로, 철도, 공항과 달리 항만은 일반 국민들이 직접 이용하거나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시설이다.
간혹 여객선을 이용하는 경우에 한두 번 경험할 수는 있겠으나 화물을 처리하는 항만을 직접 이용할 일은 사실상 없다.
그렇다보니 항만으로 인해 일반 국민이 직접적인 불편함을 느낄 상황도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항만이 우리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시설인지 인식하기 어렵다.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항만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설이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내륙은 단절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항만이 멈춘다면 우리의 생활은 많은 변화와 피해를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항만이 멈추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를 이해한다면 항만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항만이 멈추는 일이 생길까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기 이전까지는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그러나 일시에 급증한 수요로 세계 주요 항만들이 거의 멈춤 수준에 이른 상황을 우리는 경험했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약 4년 주기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은 작은 사건이겠지만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항만이 멈출 수 있는 사건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한 시대에 있는 것이다.
항만이 멈추면 선박이 들어오지 못한다. 선박에 실려 있는 화물, 선박에 싣기 위해 항만에서 기다리는 화물, 공장에서 만들어져 항만으로 운송을 기다리는 화물들은 그 상태에서 대기해야 한다. 즉, 항만의 멈춤은 전체 물류의 멈춤이 된다. 해외에서 들어 올 생필품, 제품 생산을 위해 필요한 원자재 및 부품이 들어오지 못하고 우리 경제의 성장 기반인 수출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주는 필요한 제품을 원활하게 생산하지 못한다. 생산부족 또는 중단으로 공급이 부족해지고 해외에서 수입도 안 된다. 부족해진 공급으로 상품가격은 상승한다. 상품가격의 상승은 소비자 물가를 끌어올린다. 물가상승으로 투자와 소비는 감소하고 경기는 침체된다. 결국 항만이 멈추면 우리는 필요한 것을 구할 수가 없고, 구한다 하더라도 매우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야 한다.
그것도 단기간만 멈추는 경우의 이야기다. 항만의 멈춤이 오래되면 이마저도 불가능해 질 것이다. 우리 경제에도 막대한 피해를 안겨준다. 항만이 우리의 일상과는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우리 삶속에 있는 것이다. 실제 항만의 기능이 기존의 산업물류 중심에서 전자상거래, 콜드체인 등 국민의 생활물류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고 그 영향 범위도 항만내에서 우리 삶의 거점인 항만배후지까지 확대되고 있다. 우리 일상의 멈춤이 없기 위해서는 항만의 멈춤은 없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항만이 멈추면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 무역의 약 80%, 국내 교역의 99%가 항만을 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항공기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결과적으로 불가능하다. 항공은 해상운송과 같이 대량의 화물을 운송할 수 없다.
육상운송으로 대체할 수 있는가? 일부는 가능할 수 있으나 전체를 대체하는 것은 역시 불가능하다. 지금은 필요한 물품이 전 세계에 퍼져있기 때문에 해상운송을 해야 하는 물품이 더 많다. 만약 가능했다면 내륙으로 전체가 연결되어 있는 유럽이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엄청난 피해를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론은 항만이 다시 정상작동 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펜데믹 기간 동안 항만의 정상 회복이 얼마나 느린지 알게 되었다. 항만이 멈춤이 없도록 건설되고 운영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최근 국내외 공급망 전반에 회복 탄력성이 중요해 지면서 항만시설의 충분한 확보가 강조되고 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물류흐름이 중단되지 않게 하거나 중단되는 최악의 경우라도 그 기간을 줄이기 위함이다.
회복탄력성의 가장 기본은 여유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화물의 경우 재고 수준을 높이는 것이고 시설은 좀 더 충분하고 크게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추가적인 비용 증가를 초래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항만시설의 충분한 확보를 위해 추가되는 비용은 항만의 멈춤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에 비한다면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으로 적다는 것이다.
2021년 G20 정상회의에서 공급망 회복력 정상회의를 별도로 개최하고 충분한 항만시설 확보가 중요하다는 점을 공유한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은 확인 할 수 있다. 또한 충분히 확보된 항만과 공항을 연계한 물류체계를 구축한다면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상호 부가가치를 높여 국민의 편의와 국가경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이제는 항만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항만을 개발한다는 것은 단순히 토목건설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고, 쓰는 모든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게 하는 시설을 만드는 일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항만이 없거나 기능이 멈춘다면 우리의 생활과 국가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준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번쯤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항만이 주는 일상의 평온함과 고마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일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