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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안전특집③] 철도차량-춘추전국시대, 출혈경쟁은 안전에 '독'

차량고장…제작사와 유지‧보수기관 함께 고민할 때

장병극 기자 | 기사입력 2019/07/23 [09:12]

[철도안전특집③] 철도차량-춘추전국시대, 출혈경쟁은 안전에 '독'

차량고장…제작사와 유지‧보수기관 함께 고민할 때

장병극 기자 | 입력 : 2019/07/23 [09:12]

[국토매일-장병극 기자] “철도차량분야는 바야흐로 춘추전국시대이다. 중국이 가격과 기술을 무기로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는 등 한국을 앞지르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한국 진출도 노린다. 업체의 입장에서 과도한 경쟁은 오히려 출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 영세한 차량 부품회사, 자생력 만들어줘야

 

철도산업의 특성상 시장규모가 작고 영세한 차량 부품회사가 대부분이다. 현재 한국의 차량부품회사의 95%가 임직원수 50명 미만의 소규모 회사이며, 다양한 품종을 소량 생산해야하기 때문에 부품회사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들 차량부품회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와 기술개발이 동시에 필요할 것이라는 진단은 결국 철도차량의 주요 발주처인 운영기관의 입장에서도 철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운영기관에서는 차량부품회사의 생산능력과 품질확보가 결과적으로 차량의 고장‧장애 등 열차사고의 발생요인을 감소시킬 수 있는 해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 한국철도공사 연구원이 선보인 ‘철도차량 부품호환 및 표준모델 개발’ 연구를 통해 우선 도시철도차량용 주요 부품을 표준화‧모듈화하고 향후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신규‧노후 노선에 대체할 경우 ‘다품종 소량 생산’방식의 차량부품산업 구조를 변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차량부품회사의 육성기반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수출경쟁력을 향상시켜 해당 기업들의 자생력을 확보하는 것이 기술개발의 동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안전성이 입증된 차량부품의 생산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 차량분야 시장구조는 3파전, 협력사 관계는?

 

▲ 지난 6월 '부산국제철도물류전'에서 차량 3사(현대로템, 다원시스, 우진산전)가 전시한 철도차량들     © 국토매일

 

타 철도분야와 달리, 차량분야는 현대로템‧다원시스‧우진산전 등 3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 철도차량 생산 업체를 중심으로 전장품을 납품하는 1차벤더업체와 2차벤더업체로 시장이 구성된다.

 

IMF 이전에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중공업, 그리고 한진중공업 등 차량제작사가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 철도차량 제작사는 사실상 ‘로템’으로 통합되었다. 이후, ‘로템’은 ‘현대로템’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2010년을 전후해 전장품을 생산하던 후발 기업들이 차량제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현재의 시장 구조가 형성되었다.

 

특히, 도시철도용 전동차와 경량전철 등은 3사 간 경쟁구도가 형성되어 있다. 다원시스는 2010년부터 2년간 서울 7호선에 56량을, 2015년부터는 서울 2호선에 200량을 공급하고 있다. 우진산전의 경우 부산 3호선 고무차륜형 경전철 차량을 개발. 납품하면서 본격적으로 차량제작분야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인천2호선, 광주2호선 등을 비롯해 서울 5‧7호선에 전동차 336량를 수주했다.

 

하지만 고속열차 및 간선형 열차는 아직까지 현대로템이 주도하는 형세이다. KTX 1세대의 도입부터 참여했던 로템은 KTX-산천 등 2세대 고속열차의 개발‧상용화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고속열차는 로템이 차량제작을 하고, 차량제작사를 포함한 타 업체가 전장품 등을 납품하는 구조이다.

 

경남에서 전장품을 생산하고 있는 모 업체 임원은 “대기업과 협력사로서 관계를 맺고 있는 영세 차량부품 회사의 입장에서 3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달갑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공정 경쟁을 통한 기술의 발전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일부 차량제작사는 타 제작사에게 부품을 납품할 경우 불이익을 주는 등 3사간 경쟁구도가 1~2차 벤더업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고 밝혔다.

 

경기도에 위치한 모 업체 관계자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협력사로 하여금 압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줄어들었고, 제작사들이 적극적으로 해외진출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 확대 및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 열차사고의 1/4는 차량주행장치 고장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구축해 제공하고 있는 ‘철도안전종합관리시스템’에서 공식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월 ~2019년 7월까지 발생한 열차사고의 원인 중 약 25%가 차량고장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였다. 총 6건 중 5건이 주행장치 고장으로 인한 탈선사고이다.

 

▲ 사고원인별 열차사고 통계(2015.1~2019.7)     © 철도안전종합관리시스템 제공

 

차량고장은 애당초 제작 상 결함도 있겠지만 사후 유지‧관리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철도사고를 분석함에 있어 제작사와 운영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심도있게 분석해야하는 이유이다.

 

철도차량은 차량일반, 주행장치, 동력장치, 차체, 부속장치, 제어장치, 제동장치 등으로 구분한다. 그 중 주행장치(Running Gear)는 차체를 지지하는 장치로서, 차량의 주행을 담당하는 부분의 총칭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주행장치는 대차, 윤축, 액슬박스 및 부속품, 스프링장치, 대차보조구조부, 기초 제동장치 등으로 구성된다. 쉽게 말해 주행장치가 고장났다는 것은 차체 하부의 대차나 차륜 등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철도 안전을 확보하는데 있어 차량 제작 자체에 오류나 결함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검증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차량을 지속적‧체계적으로 유지‧보수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도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철도기관은 공공성을 가진 철도인프라를 시공‧운영‧관리하는 곳으로 구조상 흑자경영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경영평가로 인한 흑자경영의 압박에 시달렸다. 그 결과 유지‧보수관리 분야를 대거 외주화했던 과거 사례에 주목했다. 현재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운영사가 직접 유지‧보수분야를 관리하도록 바뀌고 있지만,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한국철도공사 연구원이 ‘국토교통대전’에서 선보인 ‘철도차량 주요부품 결함발생 차지상 조기검출 모듈’ 연구에서 △물류차량 지상 차륜, 차축 베어링 결함 조기검출 시스템 △고속차량 차상 주요부품 결함 조기검출 시스템 등에 초점을 맞춘 이유이기도 하다.

 

인력에 의한 유지관리가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화물열차 등의 관리가 상대적으로 소흘할 수 있음에 주목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국내 시장진출 위한 출혈경쟁, 안전 검증은?

 

사실상 도시철도차량 및 경량전철 등은 과거와 같은 단독수주가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차량제작에 필요한 대규모 인력과 설비를 투자‧보유한 업체 입장에서는 수주를 하지 못하게 될 경우 막대한 손실을 입기 때문에 일정 부분 손실을 감안한 저가 수주에 나서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철도차량분야의 과도기적 시장 구조가 차량제작과정에서 안전성과 가격을 맞바꾸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적어도 차량제작분야에 있어서 개편된 형식승인제도가 안전성을 보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주관하고 교통안전공단이 주최, 본지가 후원해 개최했던 ‘2018 철도안전심포지엄’에서는 차량분야의 형식승인제도를 비롯한 검증관련 규정의 개정‧적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심포지엄에서는 기존의 성능시험은 설계적합성의 검증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부품별 성능시험 합격여부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에 설계검증이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발주자의 설계여부 변경이나 제작자의 설계 시행착오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납품이 지연되거나 지체상환금 분쟁 등의 문제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현재 철도차량의 정밀진단 제도와 제작검사제도가 폐지되었고, 도시철도법의 안전관련 규정도 철도안전법으로 일원화된 상태이다. 형식승인제도는 △설계적합성 검사 △합치성 검사 △차량형식시험 등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금은 과도기적 단계이지만 저가수주로 인한 출혈 경쟁이 지속될 경우, 장기적 관점에서 안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지속적 기술개발을 위한 기업의 투자가 병행되어야 하는데,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지 못한 채 수주물량 확보에만 집중한다면 승객이 직접적으로 안전을 체감하는 차량의 품질도 담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품질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차량의 안전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 차량업계의 또 다른 화두, 개조승인‧개조신고

 

전장품 업체에서는 개조승인‧개조신고제도에 대한 허점도 지적했다. 개조승인‧개조신고는 차량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일각에서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 이를 역이용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부산에 소재한 모 업체 대표는 “외산 기술로 카피(copy)를 하면 국산화하지 않은 기존 제품과 동일하기 때문에 개조승인‧신고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정작 기술력을 확보해 어렵게 국산화에 성공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개조승인‧신고의 대상이 된다. 최초 외산 기술로 제품을 만든 업체들은 해당사항이 없지만, 이후 신규로 기술을 개발해 진출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진입장벽이 생기게 된다”고 밝혔다.

 

결국은 국산화에 성공하더라도 카피제품과 가격적인 면에서 경쟁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장품의 국산화는 요원해지고, 철도 기술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굳이 국산화하지 않고 카피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도, 발주자의 입장에서도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은 악순환의 고리가 발생하게 된다.

 

여타 산업분야와 달리 철도산업계는 기술에 대한 투자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투자를 하고, 기술력 향상의 기반을 마련한다고 해도 한정된 수요와 이해관계로 인해 사장되어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올해 들어 정부에서도 철도기술분야에 좀 더 과감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당장 기술개발에 실패할 가능성이 크더라도 선제적인 투자와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의 원천을 확보할 수 있도록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운영관리기관, 그리고 제작사와 차량부품사 모두가 중국 등 거센 물결에 대응해 해외시장 진출과 더불어 기술력을 확보하고 성장 동력을 마련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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