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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박찬호 기자 | 기사입력 2019/05/21 [08:29]

<기자수첩>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박찬호 기자 | 입력 : 2019/05/21 [08:29]

 

▲ 박찬호      ©국토매일

 

 

박원순 시장이 올해 초 재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있는 37년 역사의 노포 을지면옥을 보존하기 위해 3구역 개발은 중단하고, 4구역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가 노포(老鋪)’를 적극 보존하겠다며 을지면옥을 비롯해 27년의 양미옥 등이 위치한 세운3구역은 보존하고, 을지면옥보다 훨씬 오랜 역사와 전통의 노포 밀집 지역인 세운4구역은 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세운4구역에는 서울의 갈비 명가로 알려진 70여 년 역사를 지닌 조선옥, 67년 전통의 예지동 원조함흥냉면, 60년 전통의 인의동 함흥곰보냉면 등이 위치해 있다.

 

박원순 시장의 말 한마디로 37년의 을지면옥은 보존되고 7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옥과 원조함흥냉면 그리고 60여 년 전통의 함흥곰보냉면은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한다.

 

물론 박원순 시장의 말대로 서울의 역사와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노포 등 생활유산과 도심 전통산업을 이어가는 산업생태계를 최대한 보존하고 키우려는 것이 서울시의 기본방향이라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노포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철거 방침도 공평하게 이뤄져야 한다. 만약 을지면옥의 경우 최근 남북관계로 인해 주목받는 평양냉면전문점이라는 이유로 존속되고, 조선옥이나 원조함흥냉면은 별다른 이슈가 없기 때문에 더 오래된 노포임에도 불구하고 철거한다면 이는 더욱 잘못된 정책이다.

 

세계 어느 도시든 과거의 모습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과거의 모습을 지워버릴 수도 있고, 큰 변화를 가져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전통을 살리려는 노력은 잃지 말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노포의 경우 역사적인 배경과 함께 전통을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보존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가를 다각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태리 로마의 중심지인 메르칸티 지역은 600여 년 전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또 독일의 하이델베르그 지역의 400~5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노포들의 모습은 부러움의 상징이다. 스페인의 고대도시 톨레도나 론다의 골목길은 말할 것도 없고 포르투칼 리스본의 오랜 골목을 걷노라면 마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웃 일본 교토의 중심거리인 기온(祇園)지역에도 전통과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하는 노포와 함께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세계 곳곳을 여행하노라면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노포들은 즐비하다. 로마의 중심지 메르칸티지역이나 하이델베르그, 리스본, 교토 등은 보존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다.

 

하지만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을지로, 청계천 일대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현재 모습은 비좁고 복잡한 골목길에 낡고 노후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소방시설도 갖춰지지 않아 화재라도 나면 소방차조차 진입할 수 없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3구역 토지주들도 노후화가 심각하고 안전사고 위험이 커 계획대로 정비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포를 살린다고 과거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물며 노포에 대한 기준도 없이 시장 말 한마디에 도시의 정비사업 계획을 수정하면서까지 노포를 보존한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심사숙고해야 마땅하다. 37년의 을지면옥은 보존하고 70여 년의 조선옥은 없애는 것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 것인지, 유명 노포 몇 곳 때문에 도시정비계획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지 서울시와 박원순 시장은 다시 한 번 충분히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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