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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일 ICE열차 화재사고 경험을 통한 철도안전 제언

한국철도, 화재 대응 매뉴얼 좀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설정할 필요있어

김기환 | 기사입력 2018/12/04 [20:42]

최근 독일 ICE열차 화재사고 경험을 통한 철도안전 제언

한국철도, 화재 대응 매뉴얼 좀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설정할 필요있어

김기환 | 입력 : 2018/12/04 [20:42]

▲ 김기환 전 철도기술연구원장 (국토매일 철도전문위원회장)    

[김기환 전 철도기술연구원장(국토매일 전문위원)]  지난 10월 12일 오전 6시 30분경 독일의 쾰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ICE 고속열차가 라인란트팔쯔(Rheinland-Pfalz)州의 디어도르프(Dierdorf)라는 마을을 통과할 때 열차 안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열차화재로 타고 있던 승객 510명은 안전하게 대피하였으나, 열차의 끝부분의 객차 2칸은 전소되었다.  현재 독일의 조사기관은 공식적으로 원인을 테러나 방화보다는 기술적인 결함에 중점을 두고 조사 중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열차의 변압기 문제라고도 하고, 일부는 전기접촉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하지만, 독일 교통부 산하의 독일철도사고조사위원회(Die Bundesstelle für Eisenbahnunfalluntersuchung BEU)에서 상세한 사고 원인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정확한 원인은 발표되지 않은 상태이다. 

 

필자도 이 사고가 발생할 때 독일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하던 중이었으며 뜻하지 않게 귀국하는 비행기 시간을 맞추기 위해 미리 예약한 열차표를 2시간 빠른 다른 열차로 바꿔 이동하는 불편을 겪게 되었고, ICE 열차 화재사고를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 이번 ICE 열차 화재사고를 계기로, 우리나라 KTX는 정말 화재사고 발생 시에 안전하고 체계적인 대응체계를 갖추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짚어 보고자 한다.

 

이번에 ICE열차화재사고가 발생한 노선은 독일 쾰른 중앙역에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Köln Hbf∼Rhein/Main)까지 총 180km로, 2002년 건설이 완공되어 ICE-3 고속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이 노선은 독일에서 가장 붐비는 노선 중 하나이며, 벨기에, 네덜란드 및 독일의 북쪽 지역에서 독일 남부를 통과한다.

 

쾰른에서 프랑크푸르트 공항까지는 평소에는 54분이 소요된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본(Bonn) 옆 지그부르그(Siegburg)까지 속도는 300km/h로 운행된다. 이 노선의 주변에는 복복선의 기존선이 있으며, A3 고속도로와 평행하게 되어 있다. 독일에서 이 노선의 중요성은 우리나라 경부선 KTX 노선의 광명∼대전 구간 특성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당일 화재사고를 다룬 여러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10월 12일 오전 6시 30분경, 2차례의 섬광과 함께 창문 쪽에 불길과 연기를 발견한 열차 승무원(언론의 승객 인터뷰에서는 제복을 입은 사람이라고 표현함)이 발견하고 기관사에게 통보하고 비상제동을 체결하였다. 당시 승무원들은 승객들이 마음대로 열차의 승강문을 개방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절차에 따라 신속히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열차 화재사고 직후 선로 옆의 고속도로도 일시적으로 폐쇄되어, 열차에서 빠져나와 대피한 승객들은 버스나 자동차로 안전한 지역으로 이송되었다. 열차의 화재로 인해 객차 2칸이 전소되었고, 열차에 전력을 공급하는 열차 위의 전차선이 끊어졌다. 

 

사고 이후 이 노선은 완전히 폐쇄되었으며 모든 열차는 기존선으로 우회시켜 운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이 구간의 철도 이용객들은 평소보다 약 90분 정도 지연을 감수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전체의 철도 운행이 지연되는 영향을 받았다.

 

출동한 소방대원에 의해 화재가 진압된 후 화재현장은 경찰과 독일 철도공사(DB)기술진의 현장조사를 마친 다음날인 13일 밤 사고열차를 이동시켰다. 그리고 중장비를 이용해 선로와 신호설비, 전차선 손상 등을  분석하고 슬래브궤도 아래 부분까지 열에 의한 영향 여부를 분석하기 시작했으며, DB는 사고 열차와 같은 모델인 403급 60편성의 ICE-3 열차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시작하였다.

 

승객의 열차표는 환불되고 손상된 수화물도 배상키로 하였으며, 독일 철도공사(DB)의 홈페이지에는 모든 열차의 운행여부 및 운행시간 등 정보가 새롭게 제공되었다. 

 

사고 일주일 후인 10월 20일부터 한쪽 방향 선로로 서행운행을 시작했으며, 이러한 비정상 운행은 약 1개월간 지속되었다. 독일 언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화재사고 당시 승객들의 피해가 최소화 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터널이 아닌 개활지에서 열차가 정차 하였다.

 

둘째는 전차선이 끊어졌을 때 고압선으로 인한 감전이나 화재 등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다. 셋째는 다행히 이른 아침 시간이었기에 휠체어 이용자나 유아 승객 등 교통약자들이 탑승하지 않아 심각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화재는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으며 그 유형 또한 다양하다. 이번 독일 ICE 열차 화재사고와 같이 짧은 순간에 확산되는 사고는 엄격한 화재안전기준에 따라 제작되는 보통의 열차에서는 접하기 매우 어려운 사고유형이다.

 

ICE 열차 화재사고를 보면서 우리나라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는 열차화재에 대한 대비가 잘 되어있는지 혹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짚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먼저, 독일 언론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ICE 열차화재가 정차한 곳이 터널속이 아니라 개활지였기에 피해를 확실히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아마도 화재 발생한 열차가 터널 안에서 정차되었다면 더 많은 혼란과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터널 안에서는 연기(유독가스)와 열 발산으로 인해 피해가 매우 클 수 있다. 이 노선의 경우 교량과 터널이 24%로 구성되어 있고, 우리나라 경부고속철도의 경우 46%가 터널구간이며 교량구간까지 합치면 73%정도이다.

 

다시 말하면 경부고속철도 노선에서는 약 절반의 확률이 터널 내에서 열차가 정차할 수 있다. 지하철의 경우는 역간 거리가 짧아 가까운 다음 역까지 운행한다지만 철도공사의 ‘고속철도 운전취급 세칙’에 따르면 화재발생시 화재가 확산될 위험이 있는 곳은 피하여 도로에 인접한 곳이나 혹은 선로변에 전화기가 설치된 부근에 정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인 소규모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가능하나 금번 ICE 화재와 같이 급속도록 진전되는 열차화재가 발생하거나 혹은 승객이 동요할 경우에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화재 대응 매뉴얼에는 열차 화재사고의 유형을 구분해서, 화재 유형별 대응 절차를 좀 더 세밀하고 정교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현재 독일도 사고원인을 조사 중에 있지만 원인제공으로 추정하는 화재검지 장치 등 열차 내 안전설비의 작동상태에 대한 평소 정기점검이 필수적이다. 독일은 유럽 통합 이후 2013년부터 모든 철도차량에 EN 45525(철도차량 화재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나, ICE-3 사고차량은 DIN 5510에 따른 열차재료의 난연성 기준을 적용하였으며, 차체는 KTX-산천과 동일한 알루미늄 압출재로 제작되었다.

 

우리나라는 대구지하철 화재사고 이후 열차 실내설비의 화재안전기준은 EN45525(철도차량 화재기준)과 일부 차이는 있으나 세계에서 가장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금번 화재사고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변압기는 일반적으로 아라미드 계열인 H종 절연물 및 난연성 절연유인 실리콘유를 사용한 고온도 절연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절연유인 실리콘유의 연소점은 약 300∘C이다. 변압기는 작동 중에 발생되는 열을 충분히 냉각시킬 수 있는 용량을 가진 냉각기를 가지며, 이는 70∘C 이상에서는 냉각펌프가 작동하고, 120∘C 이상이 되면 추진부하를 감소하며, 130∘C 이상에서는 회로차단기를 통해 전류를 차단시킨다. 뿐만 아니라 절연유의 기화현상으로 인해 변압기 내부의 압력이 0.7bar를 초과하면 변압기 탱크의 폭발 방지를 위해 압력조정 밸브가 자동으로 작동한다.

 

또한, KTX열차에는 화재 가능성이 있는 37개소에 화재감지장치가 있어 화재발생 시에는 이를 감지하여 화재경보를 발생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열차용 변압기의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고려하면 1차적인 화재원인으로 추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은 이번 화재사고를 통해 화재가 발화되면, 불꽃이 생기기 전에 먼저 연기가 먼저 일어난다는 것을 감안해 신형 고속차량에만 적용중인 연기감지장치를 모든 열차에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 KTX 열차도 고려해 볼 만한 대책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전차선은 15kV 16⅔Hz(우리나라는 25kV)의 고압이 흐르고 있어 매우 위험하다. 필자도 경험했지만 고압전류가 흐르는 중에 전차선이 끊어지면 절단된 전차선은 마치 춤을 추듯 이리저리 튕겨진다. 주변에 금속류가 있으면 고압으로 인한 감전사고도 일어날 수 있으며, 또 다른 2차 화재를 유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고속철도 운전취급세칙과 같이 화재가 초기 진압이 곤란한 경우에는 먼저 관제실에 연락하여 인접선로에 열차의 운행을 중지시키고, 화재발생 열차가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 정차한 후에는 즉시 해당선로의 전차선에 비상단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즉 화재가 발생하면 관제사에게 보고한 후 열차를 안전한 위치로 정차하며, 확인 및 화재진압을 시도하고 화재진압이 곤란할 경우에는 승객 대피조치를 취할 수 있다. 화재 발생 시에는 대응 조치의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 KTX 고속 열차의 길이를 고려할 때, KTX 열차의 기장(열차 이동+통신)과 열차팀장(초기 화재규모 판단+화재 초기진압 등)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빠른 대응조치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속철도 운영사의 철도운전취급 등에 관한 세부 규정들도 다시 한 번 점검이 필요하다고 본다. 

 

세 번째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승무원과 승객들의 대응 자세와 방법이다. 금번 ICE 화재사고와 같은 경우, 일반적으로 승객들은 놀라서 동요할 수 있기에 승무원의 침착한 대응과 안내 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번 사고열차는 8량 1편성으로 전체 길이가 약 200m 이지만 우리 KTX열차의 길이와 승객은 약 2배 정도이다.

 

총 길이 380m의 고속열차에서 약 1,000명의 승객을 질서 있게, 침착하게 대피시키는 것은 평소 훈련을 통해 익숙해 있지 않으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번 독일의 화재사고 현장에서 열차 승무원이 보여준 침착한 대응자세에 대해 많은 승객들이 칭찬하고 있다.

 

특히, 화재 발생을 인지했다고 해서 운행 중인 선로 쪽으로 열차의 승객을 대피하도록 무리하게 유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므로 승객을 절차에 따라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것은 승무원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또한, 승무원의 안내와 통제에 따라 질서 있게 협조하며 따른 승객들과 모든 열차가 지연 운행되는 혼란상황에서도 불편함을 인내하면서 오랫동안 큰 불평 없이 협조하는 이용객들이 그 나라를 철도선진국으로 평가되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점은 평상시 교육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매년 화재 등 재난 사고에 대한 안전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안전 훈련도 국내외의 사고사례 경험을 바탕으로 최악의 시나리오를 설정하여 실시해야 할 것이다.

 

평상시에 운행 중인 선로에서 재난안전훈련을 실시하기는 어렵지만, 대형 재난사고를 예방하고 안전한 철도 운행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며, 이러한 재난안전 훈련에는 철도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철도를 이용하는 모든 이용객들도 함께 참여하는 형태의 훈련이 필요하다.

 

철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비와 시설을 포함한 철도인프라와 이를 운영하는 제도와 절차 그리고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평소 철저한 교육과 훈련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번 ICE열차 화재사고를 돌이켜 보며, 우리의 고속철도도 열차뿐만 아니라 모든 안전설비에 대해 다시 한 번 전반적인 점검이 필요하며, 철도 운영사는 철도운전취급에 관련된 제반 규정들이 우리 현실과 운영환경에 맞는지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한 철도종사자들은 평상시에도 정기적인 재난대응 훈련과 교육을 통해 안전관리 절차에 숙달되어 있어야 하며, 직접적인 철도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철도이용객들도 함께 참여하는 훈련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평소 안전훈련과 안전의식이 정착될 때 우리 한국의 철도는 ‘안전한국’을 대표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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