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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고용세습과 채용 비리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

박찬호 기자 | 입력 : 2019/10/07 [21:49]

▲박찬호 기자  ©국토매일

 [국토매일] 학창 시절 고려시대의 음서제도, 국채보상운동 같은 자투리 상식들을 왜 머릿속에 담고 살아야 하는 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서야 그 제도가 오늘날까지 ‘금수저’나 ‘갑질’을 일으키는 불씨였다는 것을, 그 운동이 이 땅을 사는 민족의 자주적 생존권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를 모른 채, 살아가다보면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  

 

고려 광종이 중국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도입했다. 신분제로 관직을 독점하던 호족들을 제어하려는 의도였지만, 공평성 차원에서 진일보한 제도였다. 그러나 고려와 뒤를 이은 조선에서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리가 되는 샛길은 있었다. 공신 또는 현직 당상관의 자손과 친척을 등용하는 음서제(蔭敍制)가 그것이다.

 

음서제란 폐습의 뿌리가 여간 질기지 않아 보인다. 서울교통공사 등 5개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자 총 3048명 중 333명(11%)이 재직 자와 4촌 이내 친·인척 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정규직 전환자 1285명 중 192명이 재직자의 친·인척이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불거진 '고용세습' 의혹이 사실무근은 아니었던 셈이다.

 

감사원의 이번 감사에서 드러난 백태는 요지경이다. 친형이 평가위원으로 참가한 공공기관 면접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뽑힌 1년 뒤에 슬그머니 정규직으로 갈아탄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작금의 취업난 속에 공기업 입사는 평균 수천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좁은 문'이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가족이 있는 공기업에 알음알음으로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합당한 기준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속된 말로 '빽' 없는 '맨발의 청춘'을 울리는 반칙이 아닐 수 없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기관의 임직원은 준 공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정부가 좋은 취지로 시작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이 악용되고 있는 인상이다.

 

'고용세습'도 문제이지만 정규직을 확대하기 위해 설립한 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공항공사 등 다수 공기업의 자회사 대표들이 이른바 '캠코더'(선거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면 더 큰 문제다. 시장 원리 대신 정치권의 '보이는 손'에 의해 인력 충원이 좌지우지되면 각종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공공기관이 청년층의 공정한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현대판 음서제'의 온상으로 전락해선 안 될 말이다.

 

일벌백계로 불공정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비정규직 채용 절차의 투명화, 정규직 전환 절차의 합리화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국민권익위와 노동부도 어제 비리 연루자 엄정 처벌 등 신속한 후속조치를 다짐했다. 정부가 공언한 대로 채용비리 발생 원인을 분석해 분야별 맞춤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여서 지속적이고 강도 높은 점검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취업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대다수 2030세대에게 불신과 좌절감을 안겨 주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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