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건설현장, "노동시간 단축으로 납기 맞추기 곤란"

워라밸 좋지만…‘건설 현장’은 고민 많다

국토매일 | 입력 : 2018/06/29 [02:03]

▲ 건설근로자들이 건물신축공사장에서 일하고있는 모습     ©사진제공=건설근로자공제회

 

[국토매일] 오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로가 시행된다. 주당 최대 68시간 근무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는 거다. 저녁이 있는 삶,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오는 7월1일부터 시행된다.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이 첫 번째 대상이다.

 

근로기준법은 강행 규정이기 때문에 노사가 합의해도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 만약 시간을 초과하면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결단이다. 그렇다면 성큼 다가온 ‘주 52시간’ 시대 준비는 어느 정도 돼 있을까? 

 

다른 직장인들이 퇴근하기 시작하는 오후 6시, 대기업에 다시는 A씨는 시시간에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3월 회사에 유연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퇴근을 앞당긴 덕이다. 오전 6시에서 10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출근할 수 있어 이르면 오후 3시에도 퇴근이 가능하다. A씨가 다니는 회사처럼 조직과 인력을 잘 갖추고 있는 대기업들은 다음 달 ‘주 52시간’ 시행에 앞서 비교적 일찌감치 대비책을 마련한 상태다.

 

이처럼 직원이 자율적으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가 하면 하루 근무 시간을 최소 4시간~최대 12시간으로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 또 이번 주 48시간 일했으면 다음 주 32시간만 일하는 식의 방식도 도입된다. 기존 근로개념 가운데 재량 근로와 탄력 근로, 선택 근로 등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주 52시간을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각 근로방안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선택근로제: 1개월 이내 기간의 총 근로시간만 정하고 각 일, 각 주의 근로시간과 각 일의 시작 및 종료시각을 근로자의 자유에 맡겨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 

 

▲탄력근로제: 업무량의 탄력성을 인정하여 성수기에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대신 단위 기간 동안에는 평균 52시간을 맞춰야 함 

 

▲재량근로제: 일하는 방식에서 근로자의 재량 여지가 많고, 보수도 근로시간의 양보다 질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적합한 전문적 업무로 연구개발 업무, 정보처리시스템 분석, 설계업무, 기사의 취재, 편집 업무 등 

 

이처럼 근로제에 대한 다양한 대책과 함께, 기존보다 근로시간이 줄어들면서 기업은 업무시간과 휴식시간을 엄격히 구분하고, 일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춰 흡연실 폐쇄와 저녁 5시에 PC 셧다운 하는 등의 제도도 도입되고 있다. 

 

또한 직접적 타격이 갈 것으로 예상되는 판매직과 생산직의 경우 업무의 자동화와 시스템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3조 3교대→4조 3교대’로 교대조를 개편하면서 신규직원을 추가 고용하는 방식도 등장했다.

 

다만 대기업이라도 생산직종 등에서는 혼란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업종의 특수성과 업체별 인력 사정을 고려할 때 특정 업무 종사자들은 초과 근무가 불가피하다고 호소하지만, 정부는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는 2∼3년마다 실시하는 ‘대 정비 공사’가 근로시간 준수의 최대 걸림돌이다. 대정비 공사는 원유 정제 설비 가동을 멈추고 보수하는 작업이다. 대개 1∼2개월이 소요되는데 공사 기간이 짧을수록 손실이 줄어들어 이 기간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업계는 주 52시간으로 근무가 단축되면 공사기간이 길어져 손실이 불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3개월 내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운영한다고 해도 법 준수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선업계도 업무 가운데 ‘해상 시운전’은 법정 근로시간 준수가 불가능하다며 걱정하고 있다. 해상 시운전은 건조된 선박을 선주에게 인도하기 전 검증하는 작업이다. 배 안의 근무자는 수주∼수개월간 24시간 근무 대기 상태가 된다. 

 

계절 성수기에 맞춰 생산량을 확대해야 하는 식품제조업계도 고민이 크다. 지난 4월부터 24시간 풀가동을 하고 있는 빙과류 업체들은 다음 달 3교대 체제 도입으로 인력을 채용할 예정인데 이 인력을 비성수기에 어떻게 운용할지 걱정이다. 이에 인력 충원보다 자동화 설비 확충에 나서는 업체도 있다.

 

업계가 한목소리로 원하는 것은 탄력적 근로시간제 범위를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려달라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일정 기간 내에서 근로시간을 주당 평균 52시간에 맞추는 제도다. 2주 내에서 운용이 가능하고 노사가 합의하면 3개월로 확대할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과 연관이 있는 포괄임금제 폐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 네이버, 위메프 등 일부 기업이 포괄임금 폐지 방침을 밝혔지만 대부분 기업들은 정부 가이드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7월 이후 연장근로에 당장 적용해야 하는데 기준이 없어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과정에서 예상되는 혼란을 가정해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시범적으로 주 40시간 근무를 시행하고 있지만 해외출장 시 이동 시간을 근무시간에 포함할지 등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각 기업은 거래처 직원과의 식사시간이나 사내 회식, 워크숍 등을 근무시간으로 간주할지에 관한 자체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지만 보편적 기준이 없어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은 정부 눈치를 보느라 근로시간 단축을 앞두고 발생하는 애로사항을 직접 표출하지 못하고 협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이 같은 생산직종의 공장들은 규모면에서 대기업 오더에 따르면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대응하기 쉽다는 목소리도 많다. 이 같은 대기업들과는 달리 건설현장과 중소기업은 단기적으로 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지난 5월31일, 대한 건설협회 등 22개 단체 7000여 명의 건설관계자들이 산업은행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근로시간 단축을 앞둔 상황에서 집회를 열고 주 52시간 시행에 따른 정부의 대책을 요구한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공정지연을 막기 위해 현장 공사 기한을 늘리고, 공사비도 올려달라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도로터널공사와 공동주택공사에서 현장 실무자 열에 세 명은 지금도 공사기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건설업 특성상 비나 무더위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으로 공사기한에 쫓기면 안전사고 위험도 더 커진다고 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사용자는 물론 노동자들도 건설업 특성에 맞는 제도를 요구하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후 사업주가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무리하게 작업의 속도를 요구할 경우 각종 사고 등 산업재해 물론 근로환경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하고 있다.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든 중소기업도 인력부족과 가동률 저하로 생산 차질과 납기지연을 우려하고 있다. 인천의 한 건설전문 제조업체는 납품에 쫓길 때 직원들이 주당 60시간 넘게 일하고 있다. 구인을 해도 기술자를 찾는 건 어려운데, 근로시간까지 단축되면 그야말로 기업을 꾸려갈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사업장당 평균 6명이 더 필요하고, 비용도 8조 6천억 원이 더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근로 시간 단축을 둘러싼 기업들의 대비 역시 빈익부 부익부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직과 자본 그리고 근로자를 대표하는 탄탄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은 각종 대책을 미리 연습해 보고 새로운 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또 정부가 원하는 새로운 고용도 일부 창출해 내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사용자의 인식 부족에다 경영상의 이유 그리고 구인난 등으로 ‘주 52시간’을 맞이해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처럼 주 52시간 근로 제한의 목적은 ‘일과 삶의 균형’이다. 노동자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이 주어지는데, 이와 함께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과연 개인별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줄이면 전체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까? 

 

밤샘 근무와 초과 근무의 대명사로 불리는 IT업계 종사자들. 주당 노동 시간이 많을 때는 110시간 넘기고 평소에도 80시간에서 90시간까지 일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고들 한다. 이들의 초과근무가 얼마나 되는지 근무일지를 확인해봤다. 초과 근무시간이 한 달에 170시간을 넘었지만, 회사는 80시간만 인정했다. 90시간은 이른바 ‘무료 노동’을 한 셈이다. 

주 52시간 시대까지 코앞에 다가왔지만, 이 기업의 추가 인력 채용은 없는 상황. 노동자들은 회사나 노동자 모두 꼼수를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퇴근한 뒤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일하거나 아니면 퇴근하고 집에서 일하는 방식이다. 

 

주 52시간 시대, 정부 기관들의 새 일자리 창출 청사진은 화려하다. 노동부가 추산하는 창출 일자리는 18만, 노동연구원도 19만 명의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기업 분위기는 조금 다른 상황이다. 중소기업 중앙회에 따르면 신규채용을 하겠다는 중소기업은 15%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무료 노동을 막고 양질의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엄격한 근로감독과 함께 다양한 기업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워라 벨에 대한 기대는 한층 높아지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들은 임금 감소에 따른 ‘돈 없는 저녁’에 대한 걱정도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와 국책기관에서는 주 52시간으로 인해 발생하는 임금 감소 폭을 13% 안팎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의 임금 감소가 더 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금체계를 단순화해서 기본급 비중을 높이고 근로 의욕이 감소하지 않도록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임금 보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