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철도공단, 민원에 발주 취소… 신호시스템 개량 ‘갈지자 행보’

당초 전면 개량에서 정밀안전진단 후 기능유지·KRTCS 도입으로 선회

조영관 기자 | 입력 : 2017/05/22 [20:24]

 

경부 1단계 구간 교체주기 이미 경과… 철도공단 “전면개량 수준 아냐”

 

▲ 철도시설공단 대전 본부                                    © 국토매일 자료 사진

 

[국토매일-조영관 기자] 경부고속철도 1단계 열차제어시스템 개량사업을 두고 발주기관인 철도시설공단과 업계 당사자들 간 난맥상이 가중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 유찰과 특정 업체의 민원제기 이후 철도시설공단은 발주 공고를 취소하는 등 이번 개량 사업을 정밀안전진단 후 방향을 정하는 것으로 선회했다.

 

이를 두고 철도 산업계 전반에서는 열차의 안전 운행에 핵심 역할을 하는 신호제어시스템 개량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당초 이번 논란의 불쏘시개가 됐던 통합발주와 분리발주 방식의 문제를 넘어 안전문제로까지 확대되는 양상이다.

 

공단의 모순된 행동… ‘명분 쌓기’라는 시선

 

철도공단은 당초 경부고속철도 1단계 광명~동대구 간 열차제어시스템 개량을 2019년까지 38개월 사업 기간 동안 추진할 계획이었다. 이에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약 17억원의 비용을 들여 용역을 실시하기도 했다.

 

그랬던 철도시설공단은 입찰이 한 차례 유찰되고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제기된 이후 2차 입찰이 두 차례 연기되자, 돌연 개량 사업을 ‘정밀안전진단’ 후 부분 개량을 거쳐 현재 개발 중인 KRTCS-II를 적용하는 방침으로 급선회했다.

 

이 과정에서 철도공단은 사업 재검토를 위해 3월 30일 대학 교수, 협회 전문가, 수자원공사, 철도기술연구원, 코레일 관계자 등 7명이 참가하는 자문회의와 4월 4일 본부 정책협의회를 잇달아 열었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 기술자문위원회와 정책협의회 결과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은 노후화가 심한 장애가 아닌 우발적인 장애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853억원의 대규모 국가 개량 사업을 두 차례의 ‘비공개 회의’ 후 수정한 것이다.

 

이들 두고 철도 산업계 일각에서는 철도공단이 자문회의와 정책협의회를 개최한 것은 ‘모순된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 쌓기’라고 보고 있다. 철도공단이 정책 시행에 있어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어서다. 국가 대형 사업의 방향을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시각이다.

 

일례로 철도공단 시설본부 신호통신개량부는 경쟁 입찰을 위해 분리발주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스트래픽의 민원을 일축한 바 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15일 내부 의견을 통해 ‘열차제어시스템 개량사업은 고속열차가 300km/h로 운행하는 운행선 작업으로 신선 건설사업보다 품질확보와 안전성이 더욱 요구되는 작업인 만큼 공동이행방식으로 발주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철도공단은 과거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업을 통합발주 방식으로 공고했고, 이 같은 발주 방식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줄곧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경부고속철도 1·2단계, 호남고속철도, 수도권고속철도 등 국내 고속철도 열차제어시스템 사업은 모두 공동도급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ATC(열차자동제어장치)와 IXL(연동장치)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유기적인 장치이고, 따라서 분리 발주 시 설치와 시험 등에서 어려움이 있는 반면 통합발주 방식에서는 공동책임을 부여하는 등 사업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란 게 철도공단의 입장이다.

 

철도공단의 과거 사례에서 볼 때 이번 열차제어시스템 발주 재검토는 철도공단의 자가당착이 된 셈이다.

 

공단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철도 산업계에서는 쉽사리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업계 사이에선 철도시설공단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단순 민원 제기 하나로 안전과 직결되는 개량 사업을 단박에 취소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얘기다.

 

더구나 정말 철도공단의 주장대로 정밀안전진단 후 기능유지 수준의 개량 후 KRTCS 도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1차 입찰 당시 방침을 정했어야 했다. 2차 입찰이 두 차례 연기된 뒤에야 발주 공고를 취소한 것은 되레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꼴이 됐다.

 

이와 관련해 에스트래픽 관계자는 “우리도 당연히 LS산전, 알스톰과 기존의 파트너 십을 이어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공단 입장에서도 1차 입찰 당시 에스트래픽이 당연히 들어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아티아이에서 발주가 들어오니까 의도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도공단의 이 같은 ‘갈지자 행보’는 단지 ‘민원’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철도 업계에서는 철도공단 직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민원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흘러나오고 있다. ‘또 신호야?’라는 말이 철도공단 내부에서 심심찮게 나올 정도라는 전언이다.

 

철도 업계 한 관계자는 “철도공단에서 신호통신 분야는 민원이 많은 부서로 공단 내부에서도 신호부서를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기능유지 수준 부분 개량… 문제없나?

 

그러나 철도공단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표면상으로는 두 차례 유찰과 특정업체의 민원제기로 발주 공고를 취소하고 개량 방향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KRTCS-II 개발 완료가 가시화한 만큼 그동안 신호시스템 개량 사업을 이른바 ‘투 트랙’으로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철도공단 신호처 관계자는 “개량 예산이라는 게 국고로 지원되는데, 예산이 얼마씩 배정되느냐에 따라 사업이 3년 안에 계획을 했어도 5년으로 늘어나기도 한다”면서 “그러다보니 정책협의회 등에서 언제까지 해외 업체에 기술로 끌려가야 하느냐는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말 개발이 완료되는 한국형 신호제어시스템 KRTCS-II를 시행하는 게 국익 등 여러 측면에서 좋을 것이라는 결과가 정책협의회에서 도출됐다는 것이다. 철도공단은 지난 2014년부터 ‘일반 및 고속철도용 무선통신 및 제어시스템 실용화’ 국가 R&D를 통해 KRTCS 개발에 나서고 있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민원을 계기로 사실을 다시 들여다본 것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KRTCS 도입과 관련해서는 “설계와 제작 등 6~7년 정도의 시험기간을 거쳐야 한다”며 “빠르면 2024년, 늦어도 2026년까지는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5월부터 12월까지 실시하는 정밀안전진단 결과에 따라 향후 7~8년 동안은 기능유지(부분개량) 수준의 방안을 순차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다.

 

다만 관계자는 “그동안 시기적으로 KRTCS라는 게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았을 뿐더러 내부 검토 등 허송세월을 한 부분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렇다면 철도공단이 당초 계획과 달리 올해 말까지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한 후 KRTCS-II를 도입하는 방식은 타당할까. 안전에 문제는 없을까.

 

본지가 입수한 ‘경부고속철도 시설개량 신호설비 실시설계 설계보고서’의 기관별 신호설비 교체주기에 따르면, ATC(열차자동제어장치)와 IXL을 구성하는 SSI(전자연동장치)와 경우 철도공단과 제조사 모두 동일하게 10년으로 정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 1단계 구간 모두 이미 교체주기를 경과한 것이다. 이 구간은 신호설비 노후화, 열화, 열차진동, 외부환경 등에 의해 장애 빈도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철도공단은 2004년 경부고속철도 1단계 개통 후 지난해까지 연도별 장애 추이를 살펴봤을 때 ATC는 연평균 15회, IXL은 28회에 불과한 만큼 해외 운영사례와 비교해 봐도 전면개량을 요구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철도공단 관계자는 “현재로선 신규시스템에 대한 판단과 기존 시스템 성능유지를 어떻게 하느냐는 방침으로, 내년 3월이나 4월이면 개량 방안이 나올 것”이라며 “KR연구원과 신호처에서 판단할 때 2026년 정도면 KRTCS-II 도입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개량 사업을 두고 설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체적인 시스템을 개량할지, 일부 부품을 개량할지에 대한 경제성 판단은 더 해볼 수는 있겠지만, 각 부품의 내구연한도 지났을 뿐더러 열화돼 교체할 게 상당할 것”이라며 “안전사고가 언제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설계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량이 늦어지면 시스템 장애가 발생할 소지가 높다. 장기적인 사용으로 부품이 많이 열화된 상태에서 계속 사용을 하게 되면 안전성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마치 전구처럼 어느 순간에 갑자기 작동을 멈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국 기업에 ‘러브콜’… 엇갈린 '삼각관계'

 

이번 개량 발주에서 직접적인 당사자는 대아티아이와 에스트래픽 두 개사다. 이 와중에 이들 두 국내 기업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알스톰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다분히 ‘삼각관계’다.

 

에스트래픽은 이번 개량 사업에 대아티아이가 참여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에스트래픽 자신들은 삼성SDS 때부터 25년간 알스톰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아 IXL 실적·장비·기술이 있지만 대아티아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아티아이는 자신들이 LS산전, 알스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한 게 아무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LS산전이 ATC와 IXL실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적이 없어도 될 뿐더러 어떤 업체와도 컨소시엄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아티아이는 영업에 실패한 에스트래픽이 경쟁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을 되레 폄하시키고 있으며, 그로 인해 철도 신호시스템 개량이 늦어져 안전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에스트래픽 관계자는 민원 제기 배경과 관련해 “열차제어시스템 개량은 기존 방식과 달리 모듈을 교체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굳이 통합발주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알스톰과의 협력관계가 깨지면서 경쟁관계가 된 만큼 공정경쟁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 25년간의 사업 파트너였던 알스톰이 대아티아이와 컨소시엄을 구성한 계기와 관련해 “IXL 연동장치 분야가 250억원 정도 된다. 우리와 하게 되면 공급하는 게 15~20억 정도 되는데, 대아티아이와 참여하면 150억원 정도를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스톰이 기술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삼성SDS가 하고 있는 사업을 에스트래픽으로 이관 여부를 분사 시 서로 합의했고, 계약서에도 문구를 넣었다”며 “한국의 민법과 상법상 우리가 기술이전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아티아이는 알스톰이 각 사업에 한정해 삼성SDS에 기술이전계약을 한 것이지 에스트래픽에 넘긴 적은 없다는 주장이다. 당사자인 알스톰 또한 에스트래픽의 기술이전계약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대아티아이 관계자는 “수도권고속철도 사업할 때도 알스톰과 에스트래픽이 수도권에 한해서만 공급권을 주는 것으로 TA를 맺은 만큼 컨소시엄 구성에서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라고 밝혔다.

 

본지 취재 과정에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유지 보수라는 게 상태를 평가해 경제적 손실 발생을 최소화하면서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게 맞다”면서도 “기업은 이익이 되고 안 되느냐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한다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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