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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한국건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경제발전 견인해 온 건설산업, 다가올 70년 준비한다

국토매일 | 기사입력 2015/08/14 [15:42]

광복 70년…한국건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한국경제발전 견인해 온 건설산업, 다가올 70년 준비한다

국토매일 | 입력 : 2015/08/14 [15:42]
[국토매일]15일은 대한민국이 광복 70주년을 맞는 날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그토록 염원했던 광복이 이뤄진 후 70년이란 시간동안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숱한 역경과 도전을 헤쳐 오면서 온 국민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계 8대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어려운 나라를 도와주는 나라로 발전했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30-50클럽(3만 불 국민소득-5천만 국민) 가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는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희망이 됐다.

그리고 그 위대한 여정의 중심엔 건설산업이 있었다.

▲ 세운상가 건설 당시의 모습. 1967년 준공된 세운상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재개발이자,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군이다.     ©국토매일

70년대,건설10배 넘게 성장하기도

광복 직후 국내 건설업체는 61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전후 복구사업 과정에서 미 군정청의 공사 발주가 늘면서 차츰 규모를 갖춘 건설사들이 탄생했다. 현대건설, 대림산업, 동아건설, 삼부토건, 극동건설, 삼환기업 등이 이 때 생겨났다.

미군 공사가 본격화된 1946년 초부터 1947년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1년 6개월여의 기간은 초창기 건설업계의 ‘황금기’로 회자될 만큼 건설업 여건이 좋았다.

19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화되면서 각종 개발사업이 대형화됐다.

이를 수행할 건설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건설업법(1958년)도 도입됐다.

1960년대 후반에는 월남전 특수를 계기로 해외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건설사들이 생겨났다.

현대건설은 1965년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따내며 해외진출의 신호탄을 올렸다.

한편 이 기간 동안에는 우리나라 건설사에서 주요한 의미로 기록되고 있는 세운상가, 새서울지하상가, 삼일빌딩 등이 세워졌다.

세운상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재개발 사업이자 주상복합 건물의 효시이며, 새서울지하상가는 우리나라에서 건설된 최초의 지하상가였다.

31층 114m의 높이로 건설된 삼일빌딩은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마천루’ 시대를 개척했다.

1970년대는 압축 성장을 견인하기 위해 연평균 10.8%가 넘는 건설투자가 이뤄졌다.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1967∼1971년)에는 사회기반시설(SOC)의 성장률이 무려 12.6%에 달했다.

‘중동 붐’을 타고 해외진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다 경쟁, 부실 수주 등 해외 경쟁력을 상실한 건설사들은 해외건설합리화 조치로 해외면허를 반납했고 70년대 상위권에 있던 정풍건설 등이 무더기로 퇴출됐다.

이런 가운데서도 건설업은 3차·4차 경제개발계획을 거치며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일례로 1975년 통계청에서 처음으로 통계를 잡은 건설 수주액은 6,175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제4차 계획 5년 동안의 건설 수주액은 66조 7,185억원에 달했었다.

기성액, 부가가치, 유형 고정자산 등도 모두 10배 이상의 증가율을 보일 정도로 급성장한 것이다.

▲ 1970년대 제3차,제4차 경제개발계획을 거치면서 건설업은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국토매일

시련과 극복

1980년대 들어 중·후반기를 넘어서면서 건설경기는 전반적인 둔화조짐을 보이기도 했다. 국내 공사 및 해외건설 수주액 규모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제2차 오일 쇼크의 여파로 지구촌 경제가 불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81-82년의 연속 130억 달러 대 수준을 정점으로 매년 급속한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1988년에는 16억 달러를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우리나라 해외건설 수주 규모가 다시 100억 달러를 넘어선 때는 1996년이었다. 이런 환경 변화를 바탕으로 1980년대 우리나라 건설산업은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질적 성장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도 1985년 이후에는 매년 10~20% 이상씩 증대되었으며, 기업별로 연구 전담 부서나 기술연구소를 설립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1986년 이전까지 기술연구소를 보유한 건설업체는 5개사에 불과했지만 1987년에는 16개사로 늘어났다,

1990년대는 아파트의 시대였다. 주택 200만호 건설사업 등 수도권 신도시 개발로 주택업체들이 도약했다. 청구·우방·건영 등 소위 ‘대구 3인방’과 태영건설, 신안건설 등이 부상했다. 1975년 9만 가구였던 아파트는 2000년 500만 가구를 넘어 2010년에는 800만 가구를 돌파했다.

도로 투자도 늘어 1947년 2만4433㎞에 불과했던 도로 총연장은 2013년에는 10만6414㎞로 급증했다. 해방 직후 1000여대에 불과했던 승용차 등록대수는 1575만대(2014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몰려왔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들어간 한국경제는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인 구조개혁에 떠밀려졌다.

고금리 정책과 금융 경색으로 자금줄이 막힌 동아건설, 대우건설 등 ‘골리앗’들이 잇따라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이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 등 구조조정으로 내몰렸다.

외환위기 여파가 잦아들면서 한국경제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주택 건설과 부동산 개발 붐이 일면서 건설업체 주도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개발사업이 확산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또 한번의 시련이 닥쳤다. 90년대 외환위기가 대형사의 위기였다면 2008년 금융위기는 자금기반이 약한 중견사들의 위기였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거친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은 눈에 띠게 쇠약해졌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도 10% 초반까지 낮아졌다.

해외 건설 수주액 7000억 달러 돌파

한국전쟁 직후 고작 67달러였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6205달러(2013년)가 됐다. 1980∼90년대 건설업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10%내외로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해외건설 진출을 통한 외화벌이도 탁월했다. 1988년 이후 우리나라 경상수지가 연평균 5.1%씩 성장한 반면 건설수지는 23.9%씩 성장했다. 

지난 6월에는 삼성물산이 7억 달러 규모의 호주 코넥스 고속도로 공사 계약을 맺으면서 해외건설 수주 누적액이 700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이로써 한국의 해외건설 누적 매출액은 독일을 제치고 세계 5위로 도약했다. 1965년,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2전3기 끝에 540만 달러 규모의 태국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한 후 50년 만이다.

지난 1976년, 수주액이 당시 한국 예산의 25%에 달했던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 공사, '20세기 최대 공사'로 불린 1984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재 이라크에서 공사 중인 10조원 규모의 비스마야 신도시 프로젝트 등 중동에서 대형 공사를 잇달아 수주하며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한 '건설 강국'으로 올라섰다.

다시 찾아온 위기, 미래 70년을 준비한다

하지만 현재 건설산업은 또 한번의 위기에 봉착했다. 엔저 여파에 이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후유증으로 올 경제성장률은 2%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주택시장 덕에 근근히 버티고 있는 건설산업도 위태위태하다.

해외수주액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나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건설업계가 해외진출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신시장을 개척하고 설계·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분야를 키워야 한다고 주문한다.

국내 건설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충권 대한건설협회 기술정책실장은 “우리나라 건설업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해외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명목으로 들여왔다”면서 “하지만 그 토양이 아닌 일부만 받아들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우리 건설업계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나라가 선진국처럼 성능중심 발주를 하기 위해서는 입찰제도도, 예산제도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 70년간 건설업계가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주역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하지만 이제 세계경제가 성장이 아닌 성숙단계로 접어든 만큼 건설업도 전처럼 고도성장을 구가하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제 외형과 실적 위주가 아닌 효율과 성능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태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은 “과거 70년간 건설산업이 한국경제의 압축성장에 기댄 채 다소 수동적이었다면 미래 70년은 스마트시티 등 패키지 산업의 강점을 살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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