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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일본어 그늘 벗어나는 건설업

전병수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2/10/07 [14:28]

[칼럼] 일본어 그늘 벗어나는 건설업

전병수 논설위원 | 입력 : 2022/10/07 [14:28]

▲ 전병수 논설위원     ©국토매일

우리 산업현장에서 난무하던 일본어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한국의 산업현장에 박힌 일본어는 뿌리가 깊다. 광복 후 7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해마다 국가 차원의 순화운동이 펼쳐졌지만 의도만큼 이뤄지지는 않았다. 아직도 산업현장에는 일본어가 통용되는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훨씬 줄어들었다. 

 

일본어가 사용되는 현장은 광범위했다. 건설업을 필두로 인쇄·출판, 기계, 부품 등 산업계를 넘어 생활 속에서도 일본어는 넘쳐났다. 신문사 편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일본식 용어를 모르면 업무가 불가능할 때도 있었다.

 

기자가 ‘병아리’ 시절의 이야기이다. 원고지에 기사를 작성해 데스크에 올리면 돌아오는 첫 마디가 “야마가 뭐야?”였다. 기사의 핵심 내용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편집부에서는 “미다시를 잘 뽑아야 기사가 산다.”는 말을 듣는다. 제목을 잘 달아야 기사가 산다는 뜻이다.

 

현장 취재를 나갔을 때도 거리낌 없이 오가는 일본식 용어에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야지가 곤조를 부려 데모도들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일찍 시마이 했다. 야마가 돌아 함바에서 막걸리만 이빠이 마셨다.” 이 말은 “십장이 성질을 부리며 보조공들을 데리고 가는 바람에 일찍 끝냈다. 화가 나 현장 식당에서 막걸리만 잔뜩 마셨다.”는 뜻이다. 사실은 이런 말보다 더 알아듣기 힘들었던 게 현장의 전문 용어였다. ‘니플’ ‘쓰미’ ‘텐조’ ‘시아게’ ‘가이당’ 등등.

 

해방이 되고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현장에서는 일본식 용어가 그대로 쓰였다. 비단 건설현장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청계천 공구상가, 충무로 인쇄골목 등도 마찬가지였다. 왜 일본어는 현장에서 질기도록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까. 몸서리치도록 일본을 싫어하면서도 현장에서는 왜 일본어를 놓지 못했을까. 

 

건설업을 예로 들어보자. 일제가 물러난 후 우리나라의 현대 건설사(建設史)가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은 열악했다. 강점기 동안 일본인들이 했던 건설업을 한국인이 맡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미처 가져가지 못한 건설공구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제대로 건설기술을 연마한 한국인도 드물었다. 기술이라곤 기껏해야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대한민국 건설인을 대표하는 정주영 회장, 한국 건설업 면허 1호인 삼부토건의 창업주 조정구 회장, DL(구 대림산업) 창업주 이재준 회장, 동아건설 창업주 최준문 회장, 삼환기업 창업주 최종환 회장 등 1세대 건설인들 역시 건설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건설보국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건설업에 뛰어들었지만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 기술, 자본 등이 황무지 상태였다.

 

이후 미군공사가 발주되면서 건설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시장은 형성되었다. 일본식 현장 용어가 그대로 사용됐다. 건설업 전문용어가 어디 한 두 개인가. 우리말로 순화해 재정립하지 못했다. 그럴 여유도, 재원도 없었다. 그보다는 현장을 마감하는 것이 더 급했다. 공사 진척도 더 빨랐다. 현장을 지휘하는 관리자 역시 일본 용어를 구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당시의 상황은 그랬다.

 

언어는 개인이나 단체가 쉽게 바꿀 수 없다.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서 일본식 용어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건설업계 또는 건설현장이라는 사회 속에서 ‘건설을 말해주는 개념’으로 약속이 됐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건설현장의 용어들이 하나 둘 순화되고 있다. 일본어가 빠져나간 자리를 우리말, 또는 영어가 메우고 있다. 건설기술의 발전에 따라 수없이 많은 영어식 용어들도 새로 생겨나고, 우리 현장은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언어에도 경쟁의 논리가 작용한다. 건설현장의 비계를 놓고 우리말인 ‘비계’와 일본말인 ‘아시바’가 경쟁을 했다. 지금은 ‘아시바’보다는 ‘비계’라는 말을 많이 쓴다.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같은 대상을 나타내던 말이 경쟁을 하다가 한쪽이 이기면 다른 한쪽은 사라지거나 덜 쓰이게 된다. 언어가 지닌 특징 중 하나다. 

 

건설현장의 언어경쟁에서 우리말이 이겨가고 있다. 단순히 세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건설업과 문화가 강해지고 글로벌화 됐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한글날에는 요란한 캠페인보다는 우리말을 지켜준 주시경, 최현배, 양주동, 한갑수 등 위대한 한글학자들을 기억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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