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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철도 비밀노트–6화]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쏠렸던 날 ②

금강산역에서 제진역까지 동해선 시험운행 행사를 중심으로

양정규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5/25 [09:00]

[북한철도 비밀노트–6화]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쏠렸던 날 ②

금강산역에서 제진역까지 동해선 시험운행 행사를 중심으로

양정규 객원기자 | 입력 : 2021/05/25 [09:00]

(기획특집 시리즈 남북철도 봄은 오는가) = 반세기 이상 단절되어 온 남북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 실무협의를 하고 실제로 진행을 맡았던 실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비화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남측과 북측이 나눴던 팽팽한 긴장감과 때론 따뜻하고도 찡했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남북철도 복원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요! =

 

[국토매일=양정규 객원기자/작가] 2007년 5월 17일 오전 9시. 동해선 역시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경의선은 남측의 문산역에서 출발해 북측의 개성역까지 운행된 반면, 동해선은 북측의 금강산역에서 출발해 남측의 제진역까지 운행될 계획이었다.

 

전 해상에 풍랑주의보, 울릉도와 독도에는 강풍 경보까지 발효된 상황이었지만 밤새 내린 비가 그치고 행사 진행에는 지장이 없을 만큼 바람만 적당히 부는 쾌청한 날씨였다.

 

남과 북의 열차가 군사분계선(MDL)를 넘는 건 동해선 철도가 끊어진 1950년 이후 57년만의 일이었다.

 

▲ 2007년 5월 17일 동해선 구간 열차시험운행에서는 북측의 디젤전기기관차인 '내연 602호'형 기관차가 등장했다.  © 국토매일


북측 탑승자는 약 50명으로, 김용삼 철도상과 주동찬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부위원장(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북측 위원장) 그리고 박정성 철도성 국장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남측 탑승자로 선정된 이용섭장관을 비롯한 신언상 통일부 차관, 조일현 국회 건설교통위원장, 소설가 이호철, 송기인 신부 등 100여 명은 동해선 열차에 오르기 위해 이날 미리 속초에 집결해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버스를 타고 육로를 통해 금강산역에 도착했다.

 

▲ 금강산역에는 인근에 소재한 영웅고성고등중학교, 고성제일고등중학교 4~5학년 학생 100명이 나와 남측 대표단을 환영해 주었다.  © 국토매일

 

금강산역사에는 미리 마중나온 중고등학생들이 10열 종대로 줄을 서서 남측 탑승자들을 환영했다. 왼쪽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단 채 다소 긴장된 표정을 짓고는 있었으나 조금씩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북측 주관으로 열린 동해선의 금강산역 행사는 조촐하고 조용하게 치러졌다. 왁자지껄한 부대 행사가 곁들여진 경의선의 문산역 기념행사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북측 사회자가 개회를 선언하자 박정성 북측 철도성 국장이 경과보고를 했다. 박국장은 준비해 온 원고 이외에 발언도 덧붙였는데 동해선이 아직 연결되지 않은 제진~강릉 구간의 연결을 강조했다.

 

▲ 이날 동해선 행사에서 박정성 철도성 국장은 "금강산역에서 동해선 시험운행에 참석한 이용섭 장관 등 남측 대표단을 동포애적인 마음에서 따뜻하게 환영한다"며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 국토매일

 

동해선은 제진역~금강산역간 동해선 철도노선 25.5㎞와 남측 제진역, 북측 금강산역·감호역·삼일포역 등 6개소의 역사가 신축되거나 정비된 상태였다.

 

하지만 동해선 제진역~강릉역간 118㎞ 구간은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험 운행이 끝난 뒤 분격적인 운행이 시작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남북 열차 운행이 반세기만에 재개된 경사스러운 날이긴 했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넘어 현실적인 활용이 아쉬운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용섭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의 기념축사가 이어졌다.

 

"달리고 싶다는 한 가지 소망만을 간직한 채 오십여 성상을 기다려온 우리의 철마가 평화와 통일을 향한 민족의 열망, 민족의 혼을 싣고 다시 세차게 맥박치게 될 것입니다.”

 

▲ 당시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이 기념축사를 하고 있다.   © 국토매일

 

2005년 8월 남북이 합의한 '남북열차운행 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 철도 전문가들로 '남북철도공동운영위원회'를 하루빨리 구성·운영해 경의선과 동해선 개통 준비를 서두를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뒤이어 북측 대표인 김용삼 철도상 또한 축하연설을 했다.

 

"북녘의 금강산역을 떠나는 동해선 시험운행열차는 남녘의 제진역에서 멈춰서게 되지만 멀지 않은 앞날에 삼천리 강토를 내달리는 통일열차가 될 것입니다."

 

부디 남북철도연결 시험운행 행사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상시 운행될 그날을 염원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별다른 부대 행사 없이 단촐하게 치러진 탓에 기념 행사는 예정시간 보다 40여분 빨리 끝났다.

 

곧이어 북측 기관사 2명이 긴장된 모습으로 김용삼 철도상에게 나아가 거수경례를 했다.

 

"철도상 동지, 열차시험운행 준비됐습니다.”

 

기관사들의 승무신고를 받은 김용삼 철도상이 우렁차게 답변했다.

 

"출발하시오!“

 

금강산역 선로에 세워져 있던 ‘내연 602호’에 오른 기관사 로근찬씨 등 기관사 4명과 남측 기관사 2명은 객차 5량에 승객들이 탑승하자 제진역을 향해 가감간을 당겼다.

 

▲ ‘내연 602호’에 오른 기관사 로근찬 씨 등 기관사 4명과 남측 기관사 2명이었다.  © 국토매일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울렸다. 열차는 시속 10km/h 정도의 속력으로 금강산역을 빠져나갔다.

 

역 주변에는 물 댄 논들이 펼쳐져 있었고 가끔씩 북한 주민들이 열차로 시선을 던지긴 했지만 손을 흔들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침 철로 옆 도로를 지나가던 금강산 관광버스 안의 남측 여행객들만 손을 흔들며 반가움을 표시해주는 정도였다.

 

▲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과 김용삼 철도상 등 남북 탑승객 150명을 실은 북측 열차는 이날 오전 11시27분 북측 금강산역을 출발해 낮 12시21분 MDL을 통과한 뒤 12시34분 남측 제진역에 도착했다.  © 국토매일

 

열차는 외관상 1970년대쯤 남쪽에서 운행되었던 기관차와 비슷했다. 초록색 바탕에 하늘색으로 채색되어 러시아풍 열차의 느낌이 있었는데 북측의 '김종태 전기기관차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했다.

 

기관차 옆면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 1968년 8월 9일' 이라는 글귀가 쓰여져 있어 해당 열차에 대한 자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했다. 

 

당시 북측 행사 관계자가 귀띔했다고 전한 바에 따르면 ‘수령님이 오르신 기관차는 흔치 않은데 이번 시험운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다.’고 했다고 한다.

 

'좌석차'라고 불리는 이 객차는 길이 24.6m, 총 106석으로 구성돼 있고 남측 일반 객차에 비해 조금 더 긴 편이었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방문하던 장면에서나 봤을 법한 북측의 열차의 옆면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 1968년 8월 9일'이라는 글귀와 '영예상 26호'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고, 내부엔 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 국토매일

 

금강산이 시야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열차는 삼일포역을 지나 남강 1교 다리를 통해 남강을 건너갔다. 이어 북측의 마지막 분계역인 감호역에 들어서자 통행 세관검사가 이뤄졌다. 세관원 4명과 역무원 2명이 칸마다 탑승했다.

 

"첫열차 운행의 승객이 된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이제부터 통관 및 세관 검사를 실시하겠습니다“

 

세관원과 역무원들은 탑승자 명단과 실제 얼굴을 꼼꼼하게 대조했고 카메라 등 소지품도 철저히 검사했다. 검사 시간이 지연되자 출발시간이 늦어질 것을 염려해 검사는 모두 마치지 못한 채 열차가 다시 기적소리를 내며 다음 역을 향해 갔다.

 

조금 더 속도를 높이던 열차는 DMZ를 지나 낮 12시 21분 군사 분계선을 통과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12시 34분. 드디어 동해선 열차시험운행의 종착역인 제진역에 도착했다. 평소 남측에서 운행되던 열차와는 다른 외관과 꽃으로 장식된 ‘남북철도 련결구간 렬차시험운행’ 이라는 북측 팻말이 남측에 모여든 환영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 ‘내연 602호’ 열차가 제진역사로 집입해 들어오자, 미리 나와있던 환영인파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반기고 있다.  © 국토매일

 

북측 분위기와는 상반된 왁자지껄한 축제의 분위기였다. 제진역엔 축하내빈과 행사 진행 요원들 뿐 아니라 동네 사람들도 찾아왔다.

 

힘찬 고적대 음악소리에 맞춰 한반도기를 흔드는 환영인파들의 모습이 이 역사적인 순간을 더욱 빛나게 했다.

 

▲ 북측의 금강산역에서부터 열차를 타고 온 김용삼 철도상 등 북측 탑승자들이 남측의 강원도 고성 제진역에 도착하자 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었다.  © 국토매일

 

▲ 북측 취재 요원들의 취재열기도 무척 뜨거웠다.   © 국토매일

 

한편 당시 제진역 현장에는 행사의 빈틈없는 진행을 위해 통일부와 국토부, 방송관계자들 뿐 아니라 제진역장을 비롯, 제진역 근무자들과 코레일 본사 직원 등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중 남북철도 전략운영팀으로 합류했던 김용성(현 코레일 안전관리처 과장)님은 탑승객들이 역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불편함이 없도록 행사 이틀 전 미리 도착해 선로전환기 작동은 잘 되는지, 역구내로 들어오는 철길에 이상은 없는지 등을 점검했다고 한다.

 

어차피 기관차는 북측의 것이 오기 때문에 기관차 관련해서는 점검할 게 없었지만 행여 기관차가 갑자기 서거나 출발시 이상이 있을 수 있는 불상사를 대비해야 했다.

 

예상 시나리오를 짜놓고, 불상사가 일어날 경우 기관차를 밀어주거나 끌고 오기 위한 예비기관차도 마련해 뒀다.

 

▲ 빈틈없는 진행과 안전한 운행을 돕기 위해 코레일 직원 등도 이틀 전부터 미리 사전 점검을 하는 등 불상사에 대비한 철저한 준비를 했다.   © 국토매일

 

김용성님이 북측 탑승객들을 보았을 때 첫 느낌은 ‘낯설지 않다’ 였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이 마냥 멀게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고 보니 가까이에서 늘 보던 사람들같고 같은 동포라는 게 자연스레 느껴졌다고.

 

“평안히 잘 오셨나요?”
“반갑습니다.”

 

▲ 남과 북의 협력으로 분단 이후 끊어졌던 철길이 56년만에 다시 이어진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이 진행된 가운데 북측 기관사들도 사뭇 긴장된 표정이었으나 서서히 긴장이 풀리고 미소띈 얼굴도 지어보였다.  © 국토매일

 

서로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 다음 동해선 도로출입사무소에 마련된 오찬을 함께 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이날 동해선의 제진역에 모여든 사람들은 이 철길을 따라 가면 북까지 갈 수 있구나, 우린 이어져있구나, 라는 강한 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 남북 탑승자들은 동해선 도로출입사무소에서 나란히 정성스레 차려진 한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 국토매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출발을 준비하던 북측 기관사에게 먼저 다가간 것은 남측의 제진역장이었다.

 

악수를 청하자 북측 기관사는 망설이며 쉽게 손을 뻗지 않았다. 하지만 미소를 지으며 몇 번 더 권하자 어색한 듯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는 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가슴 벅찬 장면이다.

 

▲ 남측의 최초 제진역장이 북측 기관사에게 악수를 청하자 처음엔 긴장되는 듯 망설였지만 몇차례 권유로 결국 손을 내밀어 악수하던 장면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 국토매일

 

이용섭 건설교통부 장관과 북측 김용삼 철도상도 악수를 나누며 이렇게 말했다.

 

”꼭 다시 만납시다.”

 

양측은 이날 함께 했던 약 4시간 남짓했던 시간이 단 하루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북측 금강산역에서 내려온 열차는 북측 탑승자들을 태우고 오후 3시께 다시 북을 향해 돌아갔다.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던 열차는 다시 올 것을 기대하는 듯 긴 기적소리를 내곤 멀어져갔다. 

 

▲ 북측 탑승자들은 오후 3시 제진역에서 남측‘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북측을 향해 출발, MDL을 다시 통과해 자기측으로 귀환했다. 남과 북의 협력으로 분단 이후 끊어졌던 철길이 56년만에 다시 이어진 '남북철도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은 남북 열차 정식개통의 날을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 국토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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