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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철도 비밀노트-1화]남‧북 어색했던 첫 만남

특별열차 안에서 이루어진 남·북·러 철도운영실무회담

양정규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21/03/16 [09:00]

[북한철도 비밀노트-1화]남‧북 어색했던 첫 만남

특별열차 안에서 이루어진 남·북·러 철도운영실무회담

양정규 객원기자 | 입력 : 2021/03/16 [09:00]

(기획특집 시리즈 남북철도 봄은 오는가) = 반세기 이상 단절되어 온 남북철도를 복원하기 위해 애써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측 인사들과 만나 실무협의를 하고 실제로 진행을 맡았던 실무자들의 생생한 이야기, 그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비화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남측과 북측이 나눴던 팽팽한 긴장감과 때론 따뜻하고도 찡했던 분위기를 느껴보세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남북철도 복원의 역사 속으로 함께 떠나봅니다!=

 

[국토매일=양정규 객원기자/작가] 칼바람과 꽃샘추위를 이겨낸 봄이, 한반도의 남녘부터 북녘까지 훑어 오르며 꽃봉오리를 터뜨려주던 2006년 3월이었다. 

 

여전히 강추위가 몰아치던 러시아 대륙의 한 기차 안에선 북한의 ‘인공기’와 러시아의 삼색기, 남한의 ‘태극기’가 마주 놓여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나홋카까지 달리는 특별열차 안이었다. 

 

북한과 러시아, 남한의 철도 수뇌부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을 둘러싸고 치열한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한국-러시아, 북한-러시아 고위 철도 당국자간 2자 회담은 있었지만 3개국이 동시에 한자리에서 만나기는 처음이였다.  

 

▲ 블라디보스톡-> 나홋카 특별열차 안 남ㆍ북ㆍ러 3자 철도운영자 회담.     ©국토매일

 

테이블 인공기 앞에는 북한의 김용삼 철도상이, 삼색기 앞에는 러시아 국영철도공사 야쿠닌 사장이, 태극기 앞에는 남한의 당시 한국철도공사(현 코레일) 이철 사장이 앉아 있었다. 당시 이 역사적인 현장에 동석했던 실무자 말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합의를 도출해 낸 회동이었지만 처음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특히 남과 북 사이로 흐르던 묘한 분위기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낯선 감정이었다. 얼굴을 알지 못한 채 떨어져 살던 반가운 핏줄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과 설렘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장벽에 둘러싸인 것 같은 긴장감과 답답함, 비슷하지만 어딘지 다른 그들을 마주 해야 하는 어색함 등이 뒤섞여진 마음이었다. 얼굴조차 서로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북한의 김용삼 철도상에게선 찬바람이 불었다. 어깨를 꼿꼿이 직각으로 편 채 앉은 그는 바짝 날이 선 채 언제라도 공격할 태세를 한 모습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의 옆에는 건장한 수행원이 그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를 보호하려는 것인지 감시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북측의 말과 행동은 무척 긴장되고 경직되어 있었다. 분위기상 그들은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말하고 서류에 사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다. 합의서 서명시 반드시 평양에 그 내용을 회신 받아야 했을테니 말이다. 제 맘대로 했다가는 목숨을 내놔야할 수도 있을테니 충분히 그럴만 했다. 

 

긴장감 속에서도 남·북·러 3자 철도운영자 대표들은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의 연결이 지연되는 사유에 대해 한반도 주변의 정치, 군사적 긴장 관계 때문이라는 사실을 공감하고 있었다. 

 

이 역사적인 3자 회담이 이뤄지게 된 배경은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야쿠닌 러시아 국영철도 사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던 ‘TSR 활성화를 위한 국제포럼’에 김용삼 북한 철도상도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통보함으로써 성사된 것이었다. 

 

▲ 2006.3.16~3.17, 블라디보스톡 현대호텔에서 열린 시베리아횡단철도운영협의회(CCTT)에는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 이철 한국철도공사, 김용삼 북한철도상를 비롯, 건설교통부차관보, 극동전권대통령, 한국복합운송협회장, CCTT사무국 및 운송업체 관계자 등 5개국 70여명이 참석하여 “21세기 화물철도 운송협력 발전 전망”이라는 주제로 TSR을 통한 유라시아간 화물운송량 증강 방안 논의하고 TSR 철도분야 협력을 위한 선언문을 채택하고 서명했다.     ©국토매일

 

사실 북한의 철도 연결 사업은 2004년 4월 모스크바에서 제1차 3개국 전문가회의가 열린 뒤 지지부진한 사업이었는데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난 후 남·북·러 3자 철도 전문가회의를 통해 이행 문제를 협의하기로 논의한 바가 있던 터였다. 혹자는 러시아측에서 김용삼 철도상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남·북·러 3자 수뇌부간 만남을 이끌어 낸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 블라디보스톡 → 나호드카 특별열차에 오르기 전 남·북·러 철도운영자들이 함께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토매일

▲ 이 역사적 사건은 국내외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3국은 서로의 두터운 신뢰 를 바탕으로 한반도의 평화안정과 상호 공동이익을 위한 해결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기대했다.     ©국토매일

 

이 회동은 남·북·러 3자 철도운영자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첫 회의로써 TKR-TSR 연계사업과 TKR의 개량을 위한 재정 확보 문제 등에 대해 논의가 됐다. TKR-TSR 연결과 TKR 재건에 대한 3국의 정확한 인식을 같이하고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3국의 수뇌부가 모여 철도협력을 위한 3자 합의를 바탕으로 한 논의 결과를 러시아철도공사 사장 야쿠닌이 남·북·러 3자 회담 의장성명으로 발표하였고 이 사건은 이후 나진-핫산 프로젝트의 시발점이 된다. 

 

▲ 만찬 중 북한의 김용삼 철도상과 남한의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 러시아의 야쿠닌 철도공사 사장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토매일

▲ 컨퍼런스 만찬장에 소감 발표 중인 북한 김용삼 철도상.     ©국토매일

▲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진 컨퍼런스 만찬장의 분위기.     ©국토매일

 

일찍이 김일성은 인민에게 철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철도가 운영되는 것은 인체에 비유하면 혈액이 순환되는 것과 같다. 철도가 잘 운영되어야만 공업과 농업 생산이 보장되고 경제건설이 빨리 추진될 수 있으며 또한 인민생활도 보장될 수 있다.” 

 

북한의 ‘철도법’ (제1조)에서 조차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철도는 나라의 동맥이며 인민경제의 선행관이다.” 

 

이처럼 철도는 북한에서 절대적이며 북한에게 있어 철도란 혈액과도 같다. 철도사업은 김일성의 유훈사업으로써 북한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업일 뿐 아니라 교통정책이 곧 철도정책이라 할 정도로 철도가 절대적인 운송수단이다. 철도가 대량수송이 가능하며 수송시간이 짧고 수송원가가 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철도는 안타깝게도 거의 반세기 전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분단 전까지만 해도 국제열차를 운행하며 남한보다 한발 앞서 나가던 북한이었다. 3자 회동 이후 북한의 노후화된 선로와 거북이 수준의 속도로 운행하는 기차들은 남측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 이동하는 비행기 안에서 북측의 한 인사는 미리 준비한 술을 권하며 분위기를 주도 했다. 백사(白蛇)를 넣은 알코올 도수 60도의 북한술인 ‘백로주’였다.     ©국토매일

 

제대로 순환되지 않은 채 막혀있던 한반도 혈맥과도 같은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 남측이 나설 때였다. 남측에서는 남북철도열차 시범운행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북으로 갈 채비를 서둘렀다. 

<이어 네째주 화요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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