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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도시재생으로서의 세운상가

이충기 /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백지선 기자 | 기사입력 2020/03/09 [15:45]

[기고] 도시재생으로서의 세운상가

이충기 /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백지선 기자 | 입력 : 2020/03/09 [15:45]

▲ 이충기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국토매일


[이충기-서울시립대] 이제 시민들의 집단기억을 파괴했던 대규모의 지구단위 개발계획, 전면철거 재개발계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포함한 주변지역을 재생을 통해 활성화하는 ‘다시·세운’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노후화된 지역을 전면적으로 철거하고 재개발하던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이다.


세운상가는 도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약 1KM 길이의 거대한 건물과 공중보행 데크를 가지고 있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근대 건축자산이다. 세운상가를 허물지 않고 재생해야 하는 이유는 세운상가의 역사와 잠재력에 있다. 세운상가 재생 계획은 근대건축 자산의 재생과 아울러 역사문화와 함께하는 산업재생, 주민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재생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세운상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 비행기 공습에 의한 대규모 화재발생과 도심의 화재 전이를 방지하기 위해 만든 소개공지로 소급된다. 해방 후 이 지역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무허가 건물이 난립하자 서울시장은 청와대의 지원 아래 무허가 건물을 정리하고 이곳에 당시 최고수준의 주거상업 복합건물 세운상가를 건축하게 된다. 한국의 건축적 모더니즘(김수근)이 정치적 모더니즘(박정희)과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다. ‘인공대지’, ‘공중가로’, ‘옥상정원’, ‘보행자몰’ 등이 적용된 세운상가는 2차 세계대전 후 르 꼬르뷰제가 주도한 CIAM의 국제주의적 경향의 도시계획 프로젝트와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다.


세운상가는 1966년 9월부터 1968년 사이에 8개동, 약 1KM 길이로 건축되어 초기 도심상권의 번영을 10여 년간 주도하였다. 그러나 분단체제하에서의 빈번한 남북충돌, 1.21사태의 발생과 강남개발, 용산전자상가 개점, 명동백화점상권 부활, 도심부적격산업의 이전, 동서 간 단절 등으로 인하여 상권이 이탈하면서 도심 속 흉물로 남게 되었다. 지난 2000년 이후 10년간 세운상가의 사업체수는 20% 감소, 업체매출은 75% 감소가 될 정도로 세운상가의 산업은 위축되었다.


세운상가는 여전히 시민들에게는 레코드판, 헌책, 컴퓨터, 전자기기, 시계, 조명 등 무엇이든 구입할 수 있었던 복잡하고 오래된 추억의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다수 입주민 역시 세운상가가 다시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세운상가는 아직도 다양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창덕궁, 종묘, 남산, 동대문, 인사동, 명동 등 인근지역의 역사, 문화적 잠재력과 전자, 인쇄, 조명, 귀금속 등의 산업 잠재력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동대문지역의 의류패션, 광화문지역의 금융행정, 충무로지역의 영화 등의 산업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제조업에 유리한 입지여건을 가지고 있다.


종묘와 남산을 남북으로 연결하고 종로, 청계천, 을지로, 마른내길, 퇴계로 등 동서 간 주요간선 도로와 만나고 있어 주변지역과 활력을 교환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운상가는 보행연결이 부족하여 섬처럼 고립되어 있고 주변지역과의 연계성이 부족하여 잠재력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1979년 세운지구의 정비계획이 수립된 이후 세운상가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1995년 중구도시기본계획에 의한 상징녹지축복원계획, 1997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 의한 도심녹지축구상, 2000년 도심부관리계획에 의한 세운상가동측 30M폭 공원용지확보계획, 2004년 도심부발전계획에 의한 남북녹지축형성계획 등 많은 계획들이 주로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녹지축을 형성하는 계획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2007년 서울시는 세운상가군과 주변을 통합하여 8개의 대규모블록 단위로 철거 후 재개발하여 폭90M의 남북녹지축을 조성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2009년 서울시가 공금을 투입하여 종로에 접한 현대상가 1개동을 철거하고 초록띠공원을 조성한 바 있다. 그러나 녹지축조성이 주민부담을 가중시켰고, 세운상가군과 주변지역간의 이해문제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였으며  건설경기 위축 및 분양 리스크 증대 등의 이유로 결국 실현되지 못하였다.


거버넌스를 통한 설문조사, 주민협의체 구성 운영, 문화예술기획가자문(15회), 세운포럼(29회) 등을 통해 주민, 시민, 전문가와 소통하였고 MP회의(50회), 전문가자문위원회(25회), BBP국제컨퍼런스(4박5일), UCC공모전 등을 개최하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였다.


거버넌스의 역할은 매우 컸으며 활동은 성공적이었다. 민관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여 1단계사업구간인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대림상가의 아파트 소유자 및 세입자, 상가소유자 및 세입자, 입주 문화예술인 등을 대상으로 초상화 면담(300여회)을 실시하여 닫혀있던 주민들의 마음을 열었으며 초상화로 전시회를 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아울러 2015년 세운상가의 기술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자제품 수리협동조합 ‘수리수리 얍’과 일반시민대상의 ‘세운상가는 대학’등의 시범행사를 진행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세운상가재생사업은 은 이미 2017년 8월 1단계공사를 완료하고 세운상가의 활성화프로그램 운영, 리빙랩이나 협업지원센터 등의 운영에 들어갔다.


2단계의 경우, 타당성조사와 투자심사를 거쳐 올해, 국제설계공모를 통해 설계자를 선정하였고 2017년 말, 2단계 구간의 설계를 완료하고 2018년 공사를 시행할 예정이며 거버넌스를 통한 주민과의 소통은 끊임없이 지속할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북악-종묘-세운상가-남산을 잇는 세운상가재생의 전체사업이 완료되어 북악에서 한강까지 연결되는 남북보행과 녹지축이 완성될 것이다. 


재생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주민이 함께할 여건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해진 사업기간과 예산집행 회계연도준수를 위한 스케쥴은 실패 확률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전문가와 행정조직의 참여와 지원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주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지원이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의 참여와 주도이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 하더라도 주민이 반대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진행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그래서 주민의 역량을 키우고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주민리더를 발굴 육성하여야 한다. 따라서 민관 협력을 위한 거버넌스의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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